20년 후 너희들이 말하라
최명재
민족사관고등학교 설립자, 파스퇴르유업 회장
만경보통학교, 전주북중, 경성전문학교, 한국상업은행, 택시 운전, 운수회사 설립, 해외(이란)운수 용역업, 성진목장, 파스퇴르유업, 1996.3.1 민족사관고등학교 설립, 개교 그의 나이 69세
선생이란 결국 자신의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을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길잡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자네의 미래는 은행장감이야
무슨 일이든 일단 시작하면 시간만 때우며 적당히 한다는 것은 내 사전에는 없다. 어차피 인생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시간의 노예로 질질 끌려가며 한평생을 보낼지,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 삶을 윤택하게 할지는 일하는 자세에서 갈라진다. 나는 내 삶을 시간의 볼모로 주기보다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기로 작정했다. 마음을 달리 먹으면 일이 보인다. 내가 찾은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해내는 과정이 또한 즐겁다. 일이 즐겁기 때문에 능률도 오르기 마련이다.
1960년 은행대리를 사표내고 택시 운전 시작
하루는 40시간이다.
인생은 마라톤이고 마라톤의 긴 코스는 단거리 경주의 집합이다. 나는 하루하루를 단거리 경주하듯 최선을 다하여 뛰고 달렸다. 택시를 타려는 사람들의 바쁜 호흡에다 운전사인 나의 호흡을 일치시켰다. 처음에는 그저 열심히 달렸으나 차츰 요령이 생기면서 시간대별로 사람들이 몰리는 장소를 정확하게 짚어 능률을 배가시켰다.
대부분 택시 운전사들의 꿈은 ‘내 차’를 갖는 것이다. 나는 대 가족을 부양하면서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으나, 운전사로 나선 지 2년 만에 나의 택시를 소유하게 되었다. 차주이자 운전사인 ‘자영업자’의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꿈을 접는다. 작은 고지에 올라서서 땀을 닦으며 만족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 있어 택시 한 대는 이제 겨우 긴 여행의 첫발을 내디딘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달리기 시작한 자동차는 가속도가 붙는다. ‘내 차’를 소유한 이후에도 나는 조금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렸다. 택시 운전을 시작한 지6년이 지나자 다섯 대의 택시를 보유하게 되었다. 택시 한 대를 소유한 ‘차주’ 겸 운전사에서 소규모나마 택시회사의 ‘경영주’가 된 것이다. 은행의 말단 행원으로 들어가 7년을 근무하고 떠날 때 나는 빈손이었으나 택시 운전사 6년 만에 사업가로 변신해 있었다.
이란의 석유 채굴권을 지배하고 있는 걸프사가 유럽으로부터 이란으로 실어 나르는 유전용 자재의 수송업자 사업-파리에서 테헤란
수송대가 생필품을 싣고 테헤란에 들어오는 날에는 테헤란 시내의 물가가 요동쳤다. 이 시간을 이용하여 나는 트럭을 인도 등지로 보내어 감자 등 농산물을 싣고 왔다. 인도의 값싼 감자를 싣고 테헤란에 갖다 팔면 몇 배의 이익이 남았다. 이란 정부에서는 관세를 부과하기는커녕 ‘식량부족 현상을 해결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라면서 장려금을 지급하고 감사장도 수여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돈-재물이란 것은 흐르는 물과 같다. 어느 사람이 재물을 지녔다면 냇물이 흐르다가 웅덩이를 만나 잠시 머무는 것일 뿐이다. 돈은 물과 같아서 고이면 썩는다. 내가 돈을 벌었다면 그것은 사회가 잠시 내게 돈을 맡겨 제대로 쓰도록 기회를 허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로부터 돈을 위탁받은 나는 가장 적절한 용처에 효율적으로 그 돈을 써야 할 의무를 진다. 이 의무는 피할 수가 없는 지엄한 명령이다.
나는 장사꾼이다. 기왕 장사를 시작한 바에는 큰 장사를 하려고 한다. 창조적인 천재 한 사람이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에디슨을 보라. 아마 지구상의 수억 명이 그 때문에 일자리를 얻었을 것이다. 학교를 만들고 영재들을 교육시켜 그들로 하여금 장차 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게 한다면 나로서는 수천, 수만배의 이익을 얻는 셈이 아니겠는가
세계는 교육혁명 중이다. 세계는 뛰고 한국은 잠잔다
한국은 건국 이후 수십 년 동안 골치를 앓아왔던 입시 지옥을 깨트리기 위하여 고교 평준화정책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놓고 그 속에서 한숨을 돌리고 있는 참이었다. 그 이전에 중학교 의무교육으로 초등학생들을 지옥에서 해방시켰고, 입시경쟁이 고등학교로 들어가는 관문에 집중되자 무슨 거대한 혁명을 하듯 고교평준화라는 정책이랄 것도 없는 정책으로 현상의 거품을 제거하는 데만 일시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학에 들어가는 관문에서 ‘지옥의 불길’이 솟았다. 이 불길도 조만간 전국의 지방 중소도시에까지 대학 설립을 허용하여 대학 정원을 무한정 개방함으로써 해소한다는 계획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이 그렇게 하여 과연 전방위적인 경쟁상태에 들어간 글로벌시대에 국가와 민족이 살아남기 위한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었다. 세계는 미래를 교육에 걸고 교육 그 자체를 개혁해 나가고 있었으나 한국은 평준화의 침상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미국의 명문 사립고등학교는 대부분 신대륙, 자유세계의 운명이 교육에 달려 있다고 자각한 독지가들에 의해 설립된 것이 특징이다. 이들이 기대하고 목표했던 대로 명문 사립학교들은 미국의 번영을 앞에서 이끌어 온 지도자들을 배출하여 그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는 사무엘 필립스 부부가 1778년 미국 뉴잉글랜드의 시골에 세운 작은 학교에서 시작하여 명문으로 성장한 학교로 1973년에는 1828년에 설립된 뉴잉글랜드 최초의 여학교 애보트와 통합하여 남녀공학으로 새 출발을 했다. 모르스 부호로 유명한 과학자 사무엘 모르스와 미국 41대 대통령 조지부시, 그리고 43대 대통령인 조W, 부시 등 미국 역대 최초의 부자 대통령의 모교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이 학교가 배출한 ‘미국을 이끈 인물’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의 교정에 서면 ‘학교가 무엇 때문에 존재해야 하는지’ 구차한 설명이 필요 없다.
학생 총수는 1천 명 남짓, 학급당 학생 수는 14명, 정규직 교원의 수는 163명으로 교사 1인당 학생의 비율은 1대 6이다. 그밖에도 비정규직 교직원 59명이 있어 교직원 수는 총 222명에 이른다. 운영은 학교 자체 수입과 학생들의 등록금, 학부모 기부금, 지역사회 기부금 등으로 충당하는데 학생들의 등록금은 기숙학생은 연간 2만 8천 520달러, 일반학생은 2만 2천 160달러였다. 72개의 교실, 10만 권이 넘는 도서관의 장서, 50만 평의 조류보호구역, 30종의 스포츠를 할 수 있는 체육 시설, 컴퓨터 센터, 교육연구 및 개발 실험실 등을 갖추고 있었다.
이 학교의 교육 목표는 개교 때 제정된 앤도버헌장의 ‘지식이 없는 선은 약하고 깨지기 쉬우며, 선이 없는 지식은 위험하다’라는 명제에 축약되어 있다. 학생들은 정신과 육체 속에 지니고 있는 선과 지식을 최대한 개발하여 남을 위해 헌신하도록 교육받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 덕, 체의 전인적 교육은 기본이다. 입시위주의 주입식, 암기식 수업은 발붙일 틈이 없다.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창조’를 위한 바탕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완성된 지식을 머리 터지게 주입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어떤 교실에서도 10여 명 안팎의 학생과 선생이 어울려 활발한 토론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선생은 칠판에 쓰고 학생은 베껴 쓰는 한국적 교실 풍경도 없었다.
이들 세계적인 영재학교들을 돌아보고 나서 나는 다음과 같은 영감을 받았다.
첫째,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나 퇴계의 도산서원 등에서 보듯 선별된 인재를 집중 교육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공동체의 운명을 가름하는 중요한 일이다.
둘째, 학교의 이상적인 형태는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변한 것이 없다. 교육혁명이라는 말을 흔히 쓰지만 교육에는 파격적인 새로운 방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창안해 낸 정통적인 교육방법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혁명이다.
셋째, 한국의 교육은 조만간 한계에 부닥칠 것이다. 그 돌파구가 될 전형이 필요하다. 그때 내가 만든 새로운 학교가 글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학교는 지구상에 없다
가장 어려운 문제가 ‘민족교육’이었다.
명지대학교 총장으로 재임 중이던 이영덕
학교의 설립과 운영을 맡을 교육 행정의 전문가‘교육부 기획관리실장과 차관을 지낸 장기옥’
영재교육의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한국교육개발원이 도움‘조석희 박사’
교육개발원 원장 이돈희 박사가 2003년 교장에 부임
민족이라는 이름을 쓰지 마시오
영재교육에 필수적인 요건은 수월성교육이며, 속진교육이다. 과학에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평생 연구할 테마를 어릴때부터 붙들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예를 들어 ‘물과 공기만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연구하여 스무 살 약관에 세계가 놀랄 연구 결과를 내놓을 수도 있다. 그런 아이들을 고등학교 3년의 답답한 울타리 안에 가두어놓는 것은 역사의 발전을 막는 범죄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속진교육제도이다
1996년 봄이 오기 전에 일반교육관과 민족교육관, 생활교육관, 가정교육관 그리고 운동장 등 중요한 시설들이 완공되었다. 완공에 소요된 비용은 모두 500억 원 정도, 여기에 학교 부지(38만5천평)대금을 합산하면 대략 1천억 원 정도의 거금이 투입되었다.
‘세상에 없는 학교’가 마침내 만들어졌고, 이제 문을 열 일만 남아 있었다.
우유 전쟁 끝나지 않았다
2002년 여름, 식품영양학의 권위 있는 학자 한 분이 우유의 살균 온도에 따른 칼슘의 변화에 대한 실험 결과를 발표한 일이 있었다. 그 발표에 따르면 우유 속의 칼슘은 초고온멸균방식처럼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 칼슘을 소화시키는 비타민 D가 대부분 파손되고, 결과적으로 우유 속의 칼슘은 인체가 소화할 수 없는 물질이 되고 만다는 것이었다.
20년후 너희들이 말하라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분명 민사고는 성공을 거두었고, 바야흐로 절정기에 올라 있었으나 내가 보기에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일 뿐이었다. 자칫 ‘국내 최고의 명문고등학교’라는 허황한 이름에 묻혀 또 다른 대학입시기관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고 창조적이고 신념이 굳으며, 민족적 리더십을 갖춘 인물들을 배출하는 학교가 되려면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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